[팩트신문 = 이상혁 기자]
9월 12일 오후 1시, 구미 백산로 지하에 자리한 구미상록학교(학교장 정태하)에서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합격증 수여식이 열렸다. 올해 검정고시에는 26명이 응시해 19명이 합격했고, 이로써 지금까지 총 3,18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정규학교가 아닌 상록학교의 졸업식은 다르다. 매년 4월과 8월 검정고시 합격 여부에 따라 학습자들의 ‘졸업식’이 치러진다. 가족도, 지인도 찾기 힘든 쓸쓸한 자리이지만 정태하 교장은 오히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졸업식”이라 당당히 말했다.
1985년 비영리 민간단체로 출발한 상록학교는 성인 학습자와 학교 밖 청소년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온 터전이다. 현재까지 60여 명의 자원봉사 교사와 15명의 운영진이 헌신하고 있으며, 최고령 86세 학습자를 비롯해 80여 명이 초등·중등·고등 검정고시반, 정보화 교육, 한글 교실에서 배우고 있다. 모든 수업은 재능기부 형태로 이뤄지고, 정부나 지자체의 보조금 없이 자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태하 교장 자신도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으나, 스스로 검정고시를 치러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쳤고, 뒤늦게 경희대 사회교육원을 수료하며 평생학습의 모범을 보였다. 그의 말에는 삶의 무게와 진정성이 묻어난다. “시골 학교 한 명을 가르치는 데 수천만 원이 든다고들 하지만, 우리 상록학교는 수십 명의 봉사 선생님과 성인 학습자들이 하루 종일 배우고 가르친다. 그러나 최소한의 운영비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 참담하다.”

이번 졸업식에는 강명구 국회의원과 강승수 시의원이 참석했다. 처음 상록학교를 찾은 강 의원은 학습자들의 꿋꿋한 모습을 보고 눈시울을 붉히며 “여러분의 열정과 도전이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준다. 앞으로 학습권 보장과 교육 복지에 힘쓰겠다”고 약속했다.

상록학교는 지난 40년간 대통령상(2005), 전국평생학습대상 우수기관(2009),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특별상(2022) 등 숱한 성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현실은 열악하다. 40년 된 민방위 대피소를 임시 개조해 사용하면서 누수와 붕괴 위험 속에, 시민들의 시선조차 피해야 하는 지하 공간에서 수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한 학습자가 계단에서 미끄러져 크게 다치는 사고도 있었다.

정태하 교장은 이날 간절히 호소했다. “상록학교가 지하에서 벗어나 따뜻한 햇살이 드는 지상으로 옮겨가기를 소망한다. 수십 년을 헌신해 온 운영진과 상근자들에게 이제는 최소한의 인건비와 운영비를 보장해 달라. 구미시가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조례를 개정해 달라.” 그는 또 “구미시에는 청소년 지원과는 있지만 노인을 위한 지원과는 없다.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분들을 위해 시정이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40년을 버텨온 상록학교의 마지막 소원은 단순하다. 지하에서 벗어나 햇살 아래에서 배우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교육을 통한 인간 존엄의 회복이며,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은 이들의 땀과 눈물을 위로하는 길이다.
이날 졸업식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물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고, 무엇보다 배움의 숭고함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졸업식”일수 밖에 없다.
(교육 문의 : 054-457-3422, 010-9572-75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