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신문 = 이상혁 기자]
졸업장은 한 장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세월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누군가는 41년 동안 교실을 지켰고, 누군가는 54년을 돌아 마침내 졸업장을 품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인생의 시간이 한 교실에서 만났다.
구미상록학교는 18일 오후 1시 학교에서 ‘제41회 졸업식 및 검정고시 합격증 수여식’을 열었다.
이날 졸업식에는 정태하 구미상록학교 교장을 비롯해 강승수 구미시의회 의장, 경북도의회 교육위원인 윤종호 경북도의원, 김영태·김현경·박윤경 구미시의원과 자원봉사 교사, 졸업생, 가족 등이 참석해 늦깎이 학생들의 졸업과 검정고시 합격을 축하했다.
구미상록학교의 역사는 올해로 41년째다. 배움의 기회를 놓친 성인학습자와 학교 밖 청소년 등이 다시 공부할 수 있도록 검정고시 준비와 문해·정보화 교육 등을 이어오며 지역 평생교육의 한 자리를 지켜왔다.
그 41년의 중심에는 정태하 교장이 있었다.
정 교장은 수많은 자원봉사 교사들과 함께 배움을 포기했던 이들이 다시 책을 펼칠 수 있도록 오랜 세월 학교를 지켜왔다. 학생들의 졸업 모습을 바라보던 정 교장의 눈가도 붉어졌다. 한 해의 졸업생을 보내는 아쉬움만은 아니었다. 41년 동안 이 교실을 거쳐 간 수많은 사람과 시간이 겹쳐진 눈물이었다.
이날 윤종호 경북도의원은 자신의 늦은 학업 경험을 꺼냈다.
윤 의원 역시 학업을 뒤늦게 이어가 35세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과거 기차에서 정태하 교장을 우연히 만났던 일화도 소개했다.
당시 대화를 나누던 중 자신보다 훨씬 연장자인 정 교장이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며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위치에서도 스스로 학생이 돼 배움을 이어가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윤 의원은 정 교장의 배움에 대한 열정과 자세에 존경의 뜻을 전하며 졸업생들에게도 나이는 공부와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는 벽이 될 수 없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했다.
강승수 구미시의회 의장도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졸업과 검정고시 합격이라는 결실을 만들어낸 학습자들을 축하했다. 아울러 오랜 시간 지역 평생교육 현장을 지켜온 정태하 교장과 자원봉사 교사들의 노고에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영태·김현경·박윤경 구미시의원 등 참석자들도 졸업생들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 축하했다.
이날 가장 긴 여운을 남긴 순간은 한 졸업생이 자신의 삶을 담은 편지를 읽을 때였다.
어린 시절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고 고향을 떠나 직장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결혼 후 자녀를 키우고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의 공부는 오랫동안 뒤로 미뤄야 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전봇대에 붙어 있던 ‘구미상록학교 검정고시 학생 모집’ 안내문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마음 한편에 묻어두었던 공부가 다시 생각났다. 용기를 내 학교 문을 두드렸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결과는 중학교 검정고시 합격에 이어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이었다.
졸업식 날 아침 자녀들은 “엄마, 수고했다”고 축하했고 손주들은 “우리 할머니 최고야, 할머니 사랑해”라며 응원했다.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던 졸업생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리고 54년 만에 중학교와 고등학교 졸업장을 가슴에 품게 됐다는 소회를 전하자 결국 눈물이 흘렀다. 이를 지켜보던 참석자들도 곳곳에서 눈시울을 훔쳤다.
하지만 54년 만에 받은 졸업장은 끝이 아니었다.
그는 앞으로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밝혔다. 더 나아가 자신에게 다시 배울 기회를 열어준 구미상록학교로 돌아와 훗날 자원봉사 교사로 학생들을 돕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배움을 받은 사람이 다시 누군가의 배움을 돕겠다는 것이다.
구미상록학교의 41년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사람들 덕분이었다. 정태하 교장 혼자 만든 시간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내놓은 수많은 자원봉사 교사들과 학생들이 함께 쌓아 올린 세월이었다.

이날 행사에서도 평생교육과 학교 운영, 학습자 지원에 힘을 보탠 관계자들에게 표창과 감사의 뜻을 전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41년 동안 교실을 지켜온 교장, 35세에 대학 졸업장을 받은 도의원, 그리고 54년 만에 중·고등학교 졸업장을 품은 학생.
세 사람이 걸어온 길은 달랐다. 공부를 시작한 시기도 달랐고 살아온 인생도 달랐다.
그러나 이날 구미상록학교의 작은 교실에서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로 이어졌다.
배움에는 정해진 나이가 없었다.
제1회 졸업식에서 시작해 어느덧 제41회를 맞은 구미상록학교. 이날 흘린 정태하 교장의 눈물과 졸업생의 눈물은 지나온 세월에 대한 눈물이면서 동시에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의 눈물이었다.
졸업장은 공부의 끝을 알리는 종이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대학으로 향하는 첫걸음이었고, 누군가에게는 미뤄뒀던 자신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는 출발선이었다.












